김현희 프로필 고향 남편 근황 나이 칼기
김현희는 전 북한공작원으로 'KAL기 폭파 사건'의 범인이다.
1962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2025년 기준 연 나이 63세다. 김현희의 아버지는 외교관인 김원석이며 어머니 임명식은 교사였다. 2남2녀중 첫째로 태어난 김현희는 생후 얼마안되서 아버지의 부임지인 쿠바에서 잠시 생활했으며 어린 시절 꽃을 주는 화동으로 선발되어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일행 중 한 명에게 꽃을 주기도 했다.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한 그녀는 남파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7년 8개월간 공작원 훈련을 받았고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로 추정되는 리은혜로부터 개인 집중교육을 받고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위장했다.
또한 중국어도 공부하면서 김숙희와 함께 중국 광저우, 마카오에 현지 실습을 가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경험도 해 보았다.그리고 1987년 10월 김승일과 KAL858기의 폭파 임무를 부여받았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범행
하치야 신이치라는 일본명으로 활동한 공범 김승일과 일본인 부녀 관계로 위장하고 1987년 11월 12일 평양을 출발해 모스크바-부다페스트-빈을 거쳐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바그다드와 아부다비를 거쳐 로마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구매한 이들은 11월 28일 밤 바그다드에 도착해 대한항공 858편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아부다비에 착륙한 뒤 둘은 바그다드에서 미리 타이머를 맞춰 놓은 폭발물을 자신들이 앉았던 선반 위에 두고 내렸다.폭탄은 라디오로 위장한 폭탄과 그로 인한 폭파 위력을 극대화하는 액체 폭약이었다.
두 사람은 공항에서 하루밤을 보낸 뒤 이튿날 비행편을 통해 바레인으로 출국했고 예정대로 2번째 기착지인 방콕으로 향하던 858편은 인도양 상공에서 공중폭파되어 승객과 승무원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바레인에 도착한 이들은 계획대로 로마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이들의 일본 여권이 위조여권인 것을 확인한 일본 대사관 측의 신고로 12월 1일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되어 탈출에 실패했다.
두 공작원은 신원이 들통 나자 자살용 엠플을 깨물었고, 공범인 김승일은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김현희는 깨무는 순간 직원이 저지해 절반밖에 못 마셨고 응급처지를 받아 목숨을 건졌다.
3일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마유미(김현희)는 대한민국으로 압송되었다. 마유미가 압송되었던 날은 당시 대통령 선거 전날이었다.
사건이후
김현희는 이 사건으로 1990년 3월 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당시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안보 강화 등의 이유가 있어서인지 좀 더 북한 관련 정보를 캐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북 선전 및 첩보 등을 위해 1990년 4월 12일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되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을 죽인 테러리스트인데 처벌이 약한 것에 아쉬워하는 등 못마땅해 하는 의견도 많다. 사실 858편 피해자들이 김현희와 안기부한테 불편한 감정을 보이면서 진상규명을 요청하거나 858편 사건 관련해서 음모론이 나돌았던 것도 사면으로 김현희가 떳떳하게 활동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사고 3년 후 태국 어부들의 그물망에 걸려든 KAL858의 잔해들. 국과수는 정밀 조사를 거쳐 압축 충격에 의한 파손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동체 전체가 발견되지 않아 해당 사건의 원인을 찾는 완벽한 조사는 어려웠다. 그런데 해당 동체는 폐기 처분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특히 폐기처분에 대한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아 분노를 자아냈다.
1991년에 회고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1992년에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를 출간했다. 글 자체는 본인이 썼으나 실질적으로 두 책 모두 김현희가 직접 쓴 책은 아니고 소설가 노수민이 대필한 책이다.
2013년 1월 15일 MBC 특집대담 《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에 출연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김일성에게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고 통일을 위해서는 뭐든 하는 것이 맞다고 믿었다.그러나 체포됐을 때 북한 정권은 자신을 버렸고 테러가 남북을 이간질하는 행위임을 깨달았으며 살기 좋은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를 보며 자백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한 ‘PD수첩-16년간의 의혹,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 편에 대해 왜곡보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당시 ‘PD수첩’은 KAL기 유족 취재를 통해 ‘김현희가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결혼 근황
1997년 12월 자신을 경호했던 전직 안기부 정모 사무관과 결혼했다.당시 4년 연상의 정모 사무관은 2년 전 김현희가 그에게 "You는 왜 결혼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고 이에 정모 사무관은 김현희에게 "You에게 마음 뺏겨 정신이 없다. 다른 여자를 쳐다보지 못할 것 같다"면서 사랑을 고백했다.
이에 김현희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김현희와 결혼하려면 사표를 내야 한다는 안기부의 지침에 따라 정모 씨는 결혼 직전 사표를 제출했다.결혼 이후 남편 (1958~2021)과 슬하에 1남(2000년생 추정), 1녀(2002년생 추정) 를 두고 있다.
사건 이후에는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회 활동을 하며 방송에 간간이 출연하고 있으며 현재 대구 모처에 기거하며 지방 경찰청의 경호를 24시간 받고 있다고 한다.
김현희는‘최근 인터뷰에서 “특별사면을 받고 내가 살아도 되는가, 유족들에게 미안하고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까지도 늘 큰 짐을 하나 지고 있는 느낌”이라며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가기관이 북한의 범죄에 대해 제대로 조사·처벌하고 필요하면 북한이 사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현희가 자살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전향하자 김정일은 북한에 남아 있던 김현희의 가족들을 모두 요덕에 있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
또한 김정일은 자살에 실패하고 남한으로 전향한 김현희의 소식을 듣고 여자는 요물이라는 독설과 함께 김현희가 속했던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에서 여성 공작원들을 모두 방출하였다. 심지어 김현희를 교육한 노동당 조사부 간부들까지 요덕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고 한다. 김현희의 육촌 친척까지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김현희는 죽기 전에 부모님을 만나는게 소원이 될 정도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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